30년된 지우개

2023. 5. 25. 22:00나의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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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손주에게 지우개를 하나 건네주셨다.
집에 와서 지우개 쓰는 걸 보니,

“오잉? 이거 아빠가 초등학교때 쓰던거야!!!!~”
“진짜?”

우리 딸아이가 놀란 듯 쳐다본다.
어머니는 내가 쓰던 필기구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계셨다.
초등학교때 지우개에 글씨를 쓰고 칼로 파서 도장을 만들었었는데 아직 찍어본 적이 없어서 형광펜으로 얼른 칠해서 찍어보았다.


YRREM ????

ㅋㅋㅋㅋㅋㅋ 딸아이와 나는 한참 웃었다.
도장은 반대로 파야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나보다.

MERRY를 판걸 보니,
메리크리스마스를 앞둔 초등학교 어느 겨울이었을 것이고, 알파벳을 쓸 줄 알게된 것을 보니 5학년 이후인 것 같다.

30년 가까이 된 지우개를 마주하니,
지나간 세월이 아무렇지않게 무심하게도 멀쩡하게도 제 기능을 다하는 지우개를 마주하니,

버려지지 않는다면, 자기의 태어난 목적을 끝내 이룰 수 있음을 지우개를 통해 배우게 된다.
늦은 때란 없다. 다만 아직 쓰임받지 못했을 뿐,
누군가의 손에 맡겨지느냐에 따라 나의 30년된 지우개는 드디어 본래의 목적을 다하고 사라지리라.

우리네 인생도 본래의 목적을 다하고 사라졌으면,
아름다운 손에 맡기어...

2023.05
당신과는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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